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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귀자의 『모순』은 제목 그대로 ‘삶의 모순’을 정면으로 마주하게 하는 소설입니다. 1998년 출간 이후 오랜 시간 동안 많은 독자들에게 사랑받아온 이 작품은, 당시의 사회적 배경과 개인의 내면을 정교하게 엮으며 지금까지도 유효한 질문들을 던집니다.

    20대 여성 ‘안진진’이라는 주인공의 시선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는 가족, 연애, 결혼, 자아에 대한 끝없는 고민 속에 빠지게 됩니다. 특히 진진이 겪는 감정적 갈등과 주변 인물들과의 관계는 우리가 일상에서 겪는 삶의 양면성과 너무나도 닮아 있어 강한 공감을 자아냅니다.

    이 글에서는 『모순』을 구성하는 핵심 요소들을 현대 가족, 자아 성찰, 사랑의 이중성이라는 세 가지 키워드로 나누어 살펴보며, 이 작품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를 재조명하고자 합니다.

    양귀자 장편소설 <모순>


    현대 가족의 해체와 재구성

    『모순』에서 가장 먼저 드러나는 갈등 구조는 가족입니다. 주인공 안진진은 어머니, 아버지, 오빠, 외할머니 등과 함께 살아가며, 전형적인 '가족'이라는 울타리 속에서 겉으로는 아무 문제가 없어 보이지만, 그 내면은 수많은 균열로 가득 차 있습니다.

    특히 진진의 어머니는 가부장적인 사회에서 희생적이고 침묵적인 인물로 그려집니다. 반면 아버지는 가족이라는 틀 안에서 이중적인 삶을 살아가며, 진진의 세계관에 큰 충격을 안겨줍니다. 오빠는 가정의 책임감보다는 개인적 욕망에 충실하며, 이 역시 가족의 의미에 대한 주인공의 혼란을 심화시킵니다.

    작품 속 가족은 ‘피를 나눈 관계’만으로 성립되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줍니다. 진진은 외할머니와의 애틋한 관계, 친구 부모님과의 관계 속에서 오히려 더 따뜻함과 소통을 경험하게 됩니다. 이러한 설정은 가족이 단순히 제도적 구조가 아니라, 감정과 신뢰, 그리고 책임감으로 유지되는 공동체임을 일깨워줍니다.

    이처럼 『모순』은 20세기 말 한국 사회에서 점점 해체되어가는 가족의 전통적 개념과, 새로운 가족의 형태를 제시하며, 우리가 가족을 어떤 방식으로 다시 정의해야 하는지를 묻습니다. 독자 역시 작품을 통해 자신의 가족 관계를 되돌아보게 됩니다.


    자아 성찰과 성장의 기록

    『모순』은 ‘성장소설’의 형태를 띤 작품입니다. 주인공 안진진은 또래보다 더 빨리 현실을 자각하게 되며, 삶의 본질에 대한 질문을 스스로 던지기 시작합니다.

    그녀는 타인과의 갈등뿐 아니라, 자신과의 내면적 싸움을 끊임없이 이어갑니다. 연애를 하며 느끼는 감정의 기복, 가족에 대한 실망, 어릴 적 기억과 현재의 괴리 등 다양한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그녀는 점차 자아를 형성하고 성숙해집니다.

    특히 진진은 혼란스러운 현실 속에서도 생각하기를 멈추지 않습니다. 때로는 철학적일 정도로 삶을 분석하며, 어떤 감정도 쉽게 단정하지 않고 보류합니다. 이런 태도는 그녀가 성장을 향해 나아가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성장이라는 것은 완성된 자아에 도달하는 것이 아니라, ‘모순을 인식하고 받아들이는 것’임을 작가는 말하고자 합니다.

    이 소설에서 진진의 성장 과정은 독자의 성찰을 유도합니다. 현실 속에서 정답 없는 질문을 마주하고, 그 질문 속에서 자신을 찾아가는 여정은 모든 이가 경험하는 삶의 한 단면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모순』은 단지 청춘의 초상을 그리는 데서 그치지 않고, 인간의 근본적인 질문과 마주하는 성찰의 서사로 읽힙니다.


    사랑의 이중성과 인간관계의 모순

    진진의 연애는 이 소설의 또 다른 축입니다. 그녀는 대학 선배와의 연애를 통해 사랑의 달콤함과 잔인함을 동시에 경험합니다. 처음에는 모든 것이 완벽해 보였던 관계가, 시간이 지나며 신뢰와 의심, 기대와 실망으로 뒤엉키는 모습을 보여주며 사랑이라는 감정의 모순성을 드러냅니다.

    사랑이란 단순히 감정의 결합이 아니라, 두 사람의 성장, 상처, 가치관, 욕망이 복합적으로 얽힌 결과임을 작가는 치밀하게 묘사합니다. 진진은 사랑을 통해 또 다른 자아를 발견하고, 동시에 관계 속에서 자주 상처받습니다.

    이 작품이 특별한 점은, 진진이 연애를 실패로 끝낸 이후에도 그것을 ‘인생의 실패’로 여기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그녀는 그 경험을 통해 더 깊은 이해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됩니다. 이러한 메시지는 독자에게 위로와 공감을 전합니다.

    또한 『모순』은 인간관계 전반에서 발생하는 모순된 감정을 세밀하게 포착합니다. 좋아하지만 미워하고, 사랑하면서도 떠나는 감정의 이중성은 인간 존재의 본질적인 면모이기도 합니다. 양귀자 작가는 이 같은 감정들을 평이한 문장 속에 담담하게 담아내며, 오히려 그 진실성이 더 강하게 다가옵니다.


    결론  

    『모순』은 삶의 진실에 대해 끊임없이 묻는 소설입니다. 그것은 단순히 철학적인 질문이 아니라, 일상 속에서 누구나 한 번쯤은 겪는 고민과 혼란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가족이라는 공동체의 불완전함, 사랑의 불확실성, 자아에 대한 끊임없는 질문은 모두 우리 삶 속에서 현실로 존재하는 문제들이며, 작가는 이를 회피하지 않고 정면으로 마주하게 합니다.

    주인공 안진진은 비록 많은 것을 잃고, 상처받고, 방황하지만, 결국 삶을 스스로 선택하려는 주체로 성장합니다. 그녀의 여정은 우리 모두의 이야기일 수 있으며, 독자는 그녀의 눈을 통해 자신의 삶을 비추게 됩니다.

    이 작품의 문체는 간결하지만 울림이 크고, 서사의 흐름은 단순하지만 전달하는 감정은 풍부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순』은 출간 이후 지금까지도 많은 독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고 있으며, 누구나 한 번쯤 읽어야 할 현대 한국문학의 대표작 중 하나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삶이란 애초에 모순 덩어리인지도 모릅니다. 완벽할 수 없고, 모든 감정이 한 가지로 정리되지 않기에 우리는 계속 살아가며 고민하게 됩니다. 양귀자의 『모순』은 그 고민 자체가 삶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따뜻한 위로이자 냉철한 통찰입니다.

    지금 당신이 삶의 경계에서 혼란을 느끼고 있다면, 『모순』을 통해 스스로에게 조용한 질문을 던져보시기 바랍니다. 정답은 없지만, 그 질문 속에 삶의 실마리가 숨어 있을지도 모르니까요.